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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한국의 역사 조선, 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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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를 끌어내린 왕 세조"

 

 

 

 

 

 

 

 

1. 세조

 

 

 

 

 

 

세조(1417 ~ 1468)는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인 문종에 비해 무예에 매우 능하고 병서에 밝았으며, 진평대군, 함평대군, 진양대군이라 칭하다가 1445년 (세종 27년)에 수양대군에 봉해졌다.

세종을 이어 왕위에 오른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승하하고, 12세의 어린 나이로 조카인 단종이 즉위하자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한 야망을 가지게 되었다. 단종 즉위 후 김종서와 황보인 등 의정부 대신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세종 때의 안정된 왕권과 정치는 크게 약화되었다. 이에 수양 대군은 정인지, 한명회, 권람 등을 이끌고 김종서와 황보인 등 권력을 잡고 있던 대신들과 강력한 경쟁자였던 안평 대군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다. 1453년, 계유정난이였다.

성삼문을 포함한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 복위를 계획했고, 동생인 금성 대군도 단종 복위 운동을 벌였다. 결국 세조는 사육신과 금성 대군, 어린 단종까지 죽였다. 또한,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 집현전과 임금이 신하들과 토론하며 공부하는 제도인 경연도 폐지했다. 최고 행정 기관인 의정부의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왕이 직접 나랏일을 살피는 6조 직계제를 운영하기도 했다.

세조는 즉위 전에 <역대병요> <오위진법>을 편찬했으며, 1465년(세조 11년)에는 발영, 등준시를 두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였다. <역학계몽요해>, <훈사십장>, <병서대지> 등 왕의 친서를 저술하고 <국조보감>, <동국통감> 등의 사서를 편찬하도록 했다. 국초 이래의 <경제육전>, <속육전>, <육전등록> 등의 법전과 교령, 전례를 종합 재편하여 법전을 제정하고자 최항, 노사신 등에게 명하여 <경국대전>을 편찬하게 함으로써 성종 때 완성을 보게 한 것은 그의 치적 중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그는 불교를 숭상하여 1461년(세조 7년)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신미, 김수온 등에게 <법화경>, <금강경> 등 불경을 간행하게 하고, <대장경> 50권을 필인하기도 했다.

또한, 군사 제도를 개혁하고 호패법을 강화해 국방을 튼튼히 했으며, 북방 개척에도 관심을 기울여 두만강 유역의 여진족을 몰아냈다.

 

 

 

 

 

 

 

 

 

 

2. 6조 직계제








왕이 어떠한 정책을 실시하려고 할 때, 의정부에 지시하고 의정부는 심의,의결한 후 결정되면 6조에 명령을내려 실행하였다. 그러나 만약 문제점이 있을 경우 의정부는 왕에게 그 부당함을 고하여 왕명을 거두어 줄 것을 권하였고 이 때 왕은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의정부는 왕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태종과 세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의 명령을 6조에 직접 하달하여 실행하였고 6조도 왕에게 직접 보고하였다. 이를 6조 직계제라고 한다.

 













3. 경국대전







 세조는 즉위함과 동시에 영원히 변치 않는 대법전을 편찬하려는 뜻을 품고, 육전상정소를 신설하여 육전상정관으로 하여금 편찬하게 하고, 세조가 직접 그 심의와수정을 보았다. 1460년(세조 6년)에 먼저 재정,경제의 기본이 되는 호전이 편찬되어 <경국대전>으로 명명하고, 판각을 만들고, 이듬해에 형전의 완성에 다가갔지만 다시 개찬할 것을 명하였다. 1467년(세조 13년)에 전편의 편찬이 끝났으나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다 그 반포, 간행을 보지 못하고 세조가 사망하였다.











4. 계유정난








단종은 1452년 5월 18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12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병약하던 문종은 어린아들을 김종서, 황보인
등 원로대신에게 부탁했고, 이는 당장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등 종친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단종 즉위 이후 정국은 수양대군파와 문종의 고명을 받든 황보인·김종서파로 나뉘게 되었다. 이러한 구도의 승리는 결국 수양대군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와 황보인을 철퇴로 격살하였고, 안평대군을 강화로 귀양 보내 버렸다. 수양대군은 자신이 세운 공을 주공에 비유하기 위해 집현전 학사들에게 교서를 작성하게 했다. 집현전 학사들은 모두 도망가고, 유성원만이 남아 있다가 협박 속에 초안을 작성했다.
어린 단종은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인 1455년 윤 6월 11일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참고출처

지식백과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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