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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한국의 역사 조선,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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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희빈의 아들

 

 

 

 

이름은 이윤, 자는 휘서. 1688년 (숙종 14년) 10월 28일, 숙종과 정2품인 어머니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자이지만 태어난지 100일 만에 원자로 책봉되었고, 동시에  생모인 소의 장씨도 정1품 희빈에 봉하였다.

인현왕후 민씨가 폐비가 되자 어머니 희빈 장씨가 중전에 자리에 앉았다. 1690년  (숙종 17년) 6월 16일,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이후에 인현왕후 민씨가 다시 복위되고 어머니 희빈 장씨가 강등되자 경종은 인현왕후 민씨의 법적 아들로 입적된다.

1696년 (숙종 23년), 경종은 심호의 딸 단의왕후 심씨와 혼인하였다. 정비인 단의왕후 심씨 외에 어유구의 딸 선의왕후를 계비로 삼았다.

서인이 인현왕후 민씨의 복위운동을 벌이던 때에 아버지 숙종이 갑작스럽게 행한 환국으로 서인이 다시 조정에 들어서게 된다. 무수리였던 숙빈 최씨가 숙종의 총애 속에서 경종의 이복동생인 연잉군(훗날 영조)가 탄생하였고, 이후 서인은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과 경종의 이복동생 연잉군을 지지하는 노론으로 갈라지게 된다. 

 

 

 

 

 

 

 

 

 

2. 왕위에 오르다.

 

 

 

 

 

 

 1701년(숙종 27년) 인현왕후 민씨가 승하하였다. 이후 연잉군을 지지했던 노론들의 세력과 숙빈 최씨의 고변 속에서 생모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아 사망하게 된다. 그래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인현왕후 민씨와 친어머니인 희빈 장씨가 죽자 경종은 불안정한 세자 시절을 보내게 된다. 

1717년, 아버지 숙종이 자신의 건강이 약화됨을 이유로 숙종 지시 하에 경종은 대리청정을 시작하게 된다. 희빈 장씨의 죽음 이후 숙종은 경종을 점차 못미더워 하기 시작하였는데, 경종이 대리청정을 시작하면서 숙종은 세자를 교체할지 고민하기도 하였다. 별 다른 문제가 없이 대리청정을 이어가는 경종을 교체하기에 명분이 없었다. 

그러던 중 1718년(숙종 44년), 세자빈 심씨가 죽자 단의빈의 시호를 내리고 경종이 즉위 후에 단의왕후로 추존하였다. 이후에 선의왕후 어씨를 세자빈으로 맞아들였다. 

 1720년, 아버지 숙종이 승하하면서 세자 자리를 잘 유지하던 경종은 숙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

 

 

 

 

 

 

 

 

 

3. 끝없는 갈등

 

 

 

 

 

1720년 6월 13일, 경희궁 숭정문에서 조선 20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연잉군을 지지하던 노론 세력이 조정에 가득차있는 현실 속에 경종의 왕권은 그리 강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론은 경종에게 후사가 없으니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고 연잉군이 대리청정을 함이 어떠겠냐는 의견을 펼친다. 1721년,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였으나 이후 대리청정을 하자는 노론의 주장에 흔들린 경종은 소론의 강경한 반대 끝에 명을 거두고 친정을 하였고, 1722년 (경종 2년) 음력 3월, 임금을 시해하려는 역적이 있다는 소론 김일경, 목호룡 등의 고변에 따라 이미 대리청정 건으로 유배 중이였던 노론의 4대신인 이이명,김창집,이건명,조태채와 노론 인물들을 숙청하였다. 신임사화였다.

1722년 (경종 2년), 노론이 대거 숙청된 시점, 경종은 어머니 희빈 장씨를 옥산부대빈으로 추증하였다.

조정 대신들이 끊임없이 이간질을 하고 갈등하던 속에서도 경종은 연잉군을 미워하지 않고 잘 챙겨줬다고 한다.

 

 

 

 

 

 

 

 

4. 마지막

 

 

 

 

 

 

어릴 적 겪은 어머니 희빈 장씨의 죽음과, 즉위 후에 이어진 정신없는 정세 속에 경종은 건강이 점차 악화되었다.

이에 어의의 반대에도 왕세제 연잉군(훗날 영조)는 게장과 감 등을 올릴 것을 요구하였다. 그럼에도 경종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1724년(경종 4년) 8월 25일, 재위 4년만인 37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생전 경종이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해둠에 따라 경종의 뒤를 이어 연잉군이 왕위를 물려받게 되었다.

경종이 병상에 누웠을 당시 연잉군이 올린 게장과 감을 함께 먹는 것은 몸에 큰 해를 준다며 경종의 독살설이 연잉군(영조)를 따라다니게 된다. 1754년 (영조 30년), 영조는 독살설에 대한 해명을 <천의소감>에 기록하였다.

경종의 능은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의릉이다. 경종의 능 아래에는 선의왕후의 능이 있다.

 

 

 

 

 

 

 

 

 

 

 

 

 

 

 

 

 

 

 

출처

나무위키

지식백과

두산백과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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