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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한국의 역사 조선, 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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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즉위하다.

 

 

 

 

 

자는 낙천, 휘는 역이다. 1488년 (성종 19년) 3월 5일, 국왕 성종과 어머니는 정현왕후 윤씨 사이에서 성종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복형은 연산군이며, 본인은 성종의 후처의 소생이긴 하지만 중전의 자식이다.

1494년 (성종 25년) 4월 6일, 진성대군으로 봉해졌다. 

이복 형제인 연산군의 처남이자 연산군 비의 오라비인 신수근의 딸인 단경왕후 신씨와 혼인하였다. 

1506년 (연산군 12년) 9월 2일, 박원종, 성희안 등이 일으킨 중종반정으로 연산군 뒤를 이어 19세의 나이에 즉위하였으니, 조선 제11대 국왕이다. 

 

 

 

 

 

 

 

2. 즉위 후

 

 

 

 

 

 

1506년(중종 1년) 9월, 경복궁 근정전에서 조선 제 11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중종은 즉위 초기에 자신을 왕위에 올려준 중종반정의 공신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에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도 휘말렸으니 그의 딸이자 자신의 왕비인 단경왕후를 책봉한지 7일만에 폐비가 되고 만다. 이후 윤여필의 딸 장경왕후를 왕비로 맞이하지만 인종 출산 이후 사망하였고, 그 후 윤지임의 딸 문정왕후를 왕비로 책봉한다.

즉위 후 중종은 공신들의 세력에 눌려 제대로 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연산군 때의 폐정을 정리하려 노력하였으며 홍문관의 기능도 강화시킨다. 이후 계속해서 훈구파 공신들의 힘이 왕권을 능가하려 들자 중종은 사림파를 등용하기 시작하였고 사림파의 등용은 연산군 때에 이어 두번의 사화를 더 불러온다.

 

 

 

 

 

 

 

3. 끝 없는 고변과 기묘사화

 

 

 

 

 

1515년(중종 10), 이후 중종은 조광조등 사림파들을 조정으로 불러들였고,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현량과를 실시하며 훈구파의 힘을 누르고 왕도정치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당연 보수적 반정공신들의 큰 불만을 샀고, 중종 자신도 조광조의 지나친 요구와 급진적인 개혁에 점점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던 와중 사림파들은 공신 명단에서 거짓으로 공신이 된자를 가려내며 위훈 삭제를 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1519년 , 나뭇잎에 세겨진 주초위왕 즉, 조씨가 왕이 된다고 적혀있다는 일을 문제로 삼아 남곤, 홍경주 등의 훈구파 주도로 사림파는 대거 숙청되었다. 세번째로 사림이 화를 당한 사건 기묘사화다.

1527년 (중종 22년), 세자 인종의 처소에 죽은 쥐를 매달아 세자를 저주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세자의 이복형 복성군과 그의 어머니 경빈 박씨, 경빈 박씨의 두 딸까지 폐서인이 되었다. 뒤이어 1533년 (중종 28년), 또 다시 누군가 세자를 저주한 일이 발생하였고 이 일에 복성군과 경빈 박씨 그리고 경빈 박씨의 딸 중 한 명인 혜정옹주의 남편이 연루됐다. 이에 복성군과 경빈 박씨는 끝내 죽임을 당하였고 추후에 진짜 범인이 밝혀졌는데 이는 세자 인종의 누나인 효혜공주의 남편 김희와 김희의 아버지인 김안로였다. 이후 세자는 중종에게 복성군 모자의 신원 회복과 폐출된 두 옹주의 작호를 복위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세조의 왕비였던 정희왕후 윤씨의 아버지의 후손인 윤임과 윤원형은 두개의 파로 갈라졌는데 윤임을 중심으로 한 대윤과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으로 나뉘었다. 문정왕후의 오라비인 윤원로와 윤원형 형제의 등장에 1537년 (중종 32) 김안로는 숙청당하였다. 1538년  (중종 33년) 10월, 중종은 세자에게 선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자의 강한 반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중종의 재위 기간동안 고변 등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또한 1510년 (중종 5년)에 삼포왜란, 1522년 동래 염장의 왜변, 1525년 왜구 침입등 외부에서의 공격도 잇달았다. 중종은 국방 정책을 실시하였고, 군적 개편과 양전도 실시하고 주자도감을 설치하여 활자를 개조하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4. 마지막

 

 

 

 

 

1544년 (중종 39년) 11월 14일, 중종은 세자 인종에게 다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히고 다음날인 15일 승하하였다.

묘호는 중종, 시호는 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이다. 능은 정릉이며 경기도 고양시에 있었다가 1562년(명종 17)에 이장하였다. 현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다.

 

 

 

 

 

 

 

 

 

 

 

 

 

 

 

 

 

 

 

출처

지식백과

위키백과

두산백과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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