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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한국의 역사 조선,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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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연

 

 

 

 

 

이름은 이연, 시호는 소경이다.  1552년 음력 11월 11일 서울 인달방에서 중종의 여덟번 째 아들 서자 이초의 셋째 아들, 즉 중종의 손자로 태어났다. 즉위 전까지는 하성군에 봉해졌다.

명종의 외동 아들이었던 순회세자가 어린나이에 죽고, 명종이 다른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1567(명종 22)년 16세에 명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생전 명종이 선조를 매우 이뻐했다고 하는데 <선조실록>, <연려실기술> 등에는 명종이 여러 왕손들 중에 하성군(훗날 선조)을 유독 아낀 일화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한 날 명종이 덕흥대원군(선조의 아버지)의 아들들을 불러다가 자신이 쓰고있던 익선관을 써보라 하자 냉큼 머리에 써본 다른 형제들과 달리 하성군(선조)는 왕이 쓰는 것이니 자신이 함부로 쓸 수 없다며 예의를 보이자 명종이 이를 매우 흡족했다고 한다.

 

 

 

 

 

 

 

 

2. 즉위

 

 

 

 

 

1567년 음력 6월, 하성군은 왕위에 올랐고, 그 해 11월 명나라의 책봉고명에 따라 정식으로 조선 제 14대 국왕이 되었다.

즉위 후 처음엔 명종의 비 인순왕후 심씨 수렴청정 하다가 다음 해부터 직접 정사를 돌보게 되었다. 

이후 율곡 이이 등이 부패한 심통을 탄핵하자 선조는 그를 바로 제거하였고, 또한 선조는 김효원 등이 대비 인순왕후 심씨의 동생인 심의겸을 외직으로 축출했다. 선조는 사림파들을 등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김효원과 심의겸의 갈등으로 사림파는 또 다시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1591년에는 세자 책봉 문제로 동인이 다시 갈등하면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졌다.

선조는 조선의 오랜 문제였던 종계변무를 해결하였다. 이는 명나라 <대명회전> 조선 제 1대 왕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 이인의 아들이며, 고려말기에 4명의 왕을 시해했다는 잘못된 기록을 말하는데 조선 초기부터 이어진 문제를 선조때가 되서야 해결한 것이다. 1588년, 유홍이 고쳐진 <대명회전>을 가지고 돌아오자 벼슬을 주고 노비와 전토도 하사하였다. 

 

 

 

 

 

 

 

 

3. 왜란

 

 

 

 

 

1590년, 선조는 통신사를 파견하여 일본의 동태를 파악하도록 했다.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명나라까지 공격할 계획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왜가 조선을 공격하느냐 안하느냐를 두고 동인과 서인이 또 한번 부딪혔다. 대신들은 침입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동인의 의견에 힘을 보탰고 후에 일본의 통고에 매우 놀랐다.

1592년 4월, 일본이 조선에 상륙후 무서운 기세로 북진해오자 개성으로 향하는 피난길에 올랐으며, 뒤이어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피난했다. 선조는 이 도중에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였고 세자로 하여금 분조를 설치했고, 명나라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에 명나라는 군사들을 파견해 왜군을 물리치는데에 일조했다.

한양을 점령한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카는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도망친거에 대해 매우 황당해 했다고 한다. 나라의 왕을 향한 백성들의 민심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고, 임금에게 돌을 던지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발발 이후, 곳곳에서 의병들이 들고 일어났고 이순신, 권율 등 뛰어난 장군들의 활약까지 더해져 왜군을 퇴각시키는데 일조하였다. 1593년 4월, 왜군들이 남쪽으로 내려가자 선조는 한양으로 돌아왔다.

 1594년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사훈련을 강화하도록 하였으며 조총을 사용하도록 기술을 가르치게 하였다. 

1597년, 일본이 다시 조선으로 침입하여 정유재란이 발발하였고, 이순신 등의 활약으로 고군분투 하던 와중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왜군은 7년만에 조선 땅에서 물러났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돌보고자 진휼에 힘썼으며, 전국적으로 양전을 실시하였고, 황폐해진 토지 등을 위해 복구사업을 실시하였으나 실질적 복구 사업은 광해군때가 되서야 행해졌다.

 

 

 

 

 

 

 

 

4. 그 후

 

 

 

 

 

 

 

선조는 처음으로 서자의 아들이 왕이 된 케이스로 출신의 정통성을 신경썼는데, 이에 적장자인 영창대군을 세자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임진왜란의 경험이 있는 광해군을 하여금 뒤를 잇게 한다.

병상에 눕게된 선조는 증상이 악화되어 1608년 3월 16일, 55세의 나이로 경운궁에서 사망하였다. 재위기간은 40년이었다.

원래는 선조가 아닌 선종이였으나, 광해군 즉위 후 1616년(광해군 8년) 8월 4일 선종에서 선조로 묘호가 격상되었다.

능은 경기도 구리시에 동구릉 내에 있는 목릉이다.

 

 

 

 

 

 

 

 

 

 

 

출처

지식백과

두산백과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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