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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한국의 역사 조선, 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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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종

 

 

 

 

 

 

휘는 변, 호는 대용재이며, 1831년(순조 31년) 7월 25일, 사도세자(장조, 장헌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의 손자이자, 전계대원군 이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부 은언군때에 신유박해로 인해 가족들이 강화도에 유배되었는데, 이후 1836년(헌종 2년)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철종 일족들은 강화도에 유배되었고,  1844년(헌종 10년) 철종 이복형 회평군이 역모에 가담하였다가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일로 하여금 철종과 가족들은 교동도에 유배당했다가 강화도로 옮겨졌고 일련의 일들로 인해 왕족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였다. 

 

 

 

 

 

 

 

 

 

2. 왕이 되다.

 

 

 

 

 

 

 

1849년 (헌종 15년) 6월 6일, 헌종이 23세의 나이로 후사도 남기지 못하고 승하하였다. 이에 철종은 순조의 왕비인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명으로 궁에 입궐한다. 음력 6월 8일, 철종은 덕완군에 봉해지고 그 이틀 뒤에 19세의 나이로 헌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올랐으나 순원왕후의 수렴첨정으로 국정이 이루어져 나갔다.  1851년(철종 2년) 김문근의 딸을 왕비로 맞이 하였으니, 철인왕후 김씨이다. 이로써 순조때 부터 철종까지 왕비가 안동 김씨에서 배출된 것이다.

김문근은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극에 달하였다. 철종은 정치에 어둡다는 이유로 세도정치가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었고 철종 스스로도 정사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였다. 

1852년, 수렴첨정이 끝나고 국왕의 친정이 시작되었으나 여전히 실권은 철종에게 있지 않았으나 전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김씨 일파의 세력이 너무 강해 결국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점점 궁핍해져갔고, 1862년, 진주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봉기가 일어났으니, 이를 임술 농민 봉기라 한다.

 

 

 

 

 

 

 

 

3. 그러나

 

 

 

 

 1860년 경주, 최제우가 시작한 동학 사상이 민중 곳곳으로 퍼져나가자 조정에선 이를 탄압하였으며 교주 최제우는 처형당하고 만다. 이때 천주교도 민중 속으로 퍼져나가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1862년 5월 이후,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삼정의 문란을 잡고 각종 폐단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제대로 이루어 지지 못하였다. 

 

 

 

 

 

 

4. 마지막

 

 

 

 

 

결국 철종은 10년이 넘는 재위기간 동안 안동 김씨의 세력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여색에 빠져 지내다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재위한지 14년 만인 1864년 1월 16일, 철종은 33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헌종과 같이 철종마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승하하였고,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이 뒤를 잇게 되었다. 철종의 죽음으로 효종의 직계 남자 후손은 끊기게 된다.

대한제국 수립 이후 순종에 의해 대한제국 추존황제 장황제가 되었다.

 능은 예릉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지식백과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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