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녹수
1470년, 충청도 문의 현령 장한필과 천민 출신인 장한필의 첩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 중 하나가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이 된다는 일천즉천에 따라 장녹수도 천민이었다. 언니인 장복수는 내수사 여종이었고, 장녹수는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 집안의 종이였다. 장녹수는 제안대군의 또 다른 가노와 혼인하여 아이를 낳았다. 이후 기생이 되었는데, 외모가 뛰어났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론 평범했다고 한다. 그러나 매우 어려보이는 외모와 노래와 춤 특히 노래를 매우 잘해 연산군 눈에 띄게 된다. 1502년, 연산군은 노래에 능하다는 장녹수를 입궐시켜 숙원에 봉하였다. 장녹수는 연산군을 아이다루듯 하였고 외모보단 아양과 교태로 연산군의 마음을 빼앗았다. 연산군은 장녹수를 숙원에 봉한 뒤 장녹수의 집으로 많은 재물과 노비를 보냈다. 장녹수가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갈수록 장녹수의 기세는 등등해져 갔다.
얼굴은 보통을 넘지 못했으나, 남모르는 교사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었다.
<연산군 일기> 연산군 8년 11 25일
1503년 (연산군 9년), 연산군은 장녹수를 종3품 숙용에 봉하였다. 품계를 올린 것이다.
왕의 힘을 뒤에 업고 자신의 형부 김효손에게 벼슬을 주었다. 또 연산군은 장녹수의 집을 짓겠다며 민가를 헐기도 하였다.
1504년, 동지중추부사 이병정이 장녹수의 하인에게 모욕을 당한다. 그러나 장녹수는 그를 감옥에 보냈고, 장녹수에게 수차례에 걸쳐 뇌물을 바치고 겨우 풀려난다.
1505년 12월, 장녹수의 치마를 밟았다는 이유로 하급 기생인 운평 옥지화를 군기시 앞에서 목을 베었다. 그리고 그 머리를 취홍원, 뇌영원에 돌려 보이고, 연방원에 효시하였다. <연산군 일기> 연산군 11년 12월 23일
1506년, 자신의 언니 장복수를 천민에서 면천하여 장복수와 그의 조카들의 신분을 양인으로 상승시켰다.
이외에도 여러 일이 있었다.
이처럼 장녹수는 왕의 총애를 빌미로 나랏일에 관여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쓸쓸한 결말을 불러온다.
1506년 9월,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과 함께 장녹수도 궐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장녹수는 군기시 앞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장녹수에게 분노하던 많은 백성들은 장녹수의 시신에 수 많은 돌멩이를 던져댔다.
유배당한 연산군또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며 자신의 부인이 보고싶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왕의 품에 안겨 세상이 자기 것이 된 듯 권세를 누리던 여인 장녹수다.
2. 김개시
선조 때를 이어 광해군 때 까지의 상궁이다. 천민의 딸이지만 광해군의 세자 시절 동궁으로 입궁하였다. 김개시는 문서 처리 능력이 뛰어나서 이후 선조의 나인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선조에게 승은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김개시는 꾀가 좋고 술수에 능했던걸로 보인다.
김상궁은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는데, 흉악하고 약았으며 계교가 많았다. <광해군 일기>
광해군의 왕위 계승을 위해 대푹파의 편에 섰으며 광해군의 즉위 이후엔 제조상궁이 되었다고도 한다.
김개시는 광해군의 총애와 신임을 받는 상궁이었다. 이 때문에 김개시도 국정에 관여할 수 있었고 외에도 세력을 제거하는 일에 관여하기도 했다. 장녹수는 가무에 능해 왕을 사로잡았다면 김개시는 정치적 감각이 매우 좋았던걸로 보인다.
김개시는 이런 정치적 술수로 권신 이이첨과 비빌정도로 궐 내에서 권력을 손에 쥐었다고 한다.
김개시는 매관매직을 아주 일삼아 했는데 이의 정도가 너무 심하여 윤선도와 이회 등의 대신들이 수차례의 상소를 올려 탄핵을 요구하였으나 도리어 대신들이 유배를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정조가 엮은 조선시대의 사서, 역사책인 <조야집요>에 적힌 바를 따르면, 김개시의 권세가 중전 유씨를 뛰어 넘을정도 였다고 한다. 때문에 광해군이 어느 후궁 침소에 들지 마저 김개시가 직접 정해줬다고 한다.
김개시는 인조반정의 주요 인물인 김자점에게 뇌물을 받고 광해군을 배신한다. 광해군 말기에 반정의 기세가 보인다는 상소가 여러번 올라 왔지만, 김개시는 이 때마다 광해군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1623년 (광해군 15년) 3월 13일, 인조반정이 성공하였다. 반정 세력들이 광해군을 끌어내렸고, 반정 세력들에 의해 김개시는 처형당했다.
정치적 감각과 민첩함을 더 똑똑하게 쓰지 못하고 부패를 일삼은 궁녀.
그 권력이 자신의 진짜 힘이 아닌 왕의 힘을 업었을 뿐이라는 걸 몰랐던 김개시.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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